
미국 대선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해진다.
4년 전보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경합주에서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 추세에 있다.
미국의 선거 전문 사이트 270towin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여러 종류의 판세 지도를 볼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 반영된다고 가정할 경우, 10월 28일 기준으로 트럼프는 선거인단 중 287명을 확보해, 251명의 선거인을 확보한 카멀라 해리스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이 결과대로라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해리스가 이기더라도 대선 승자는 트럼프가 된다.
이미 국내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경우 한국 경제에 재앙적인 악영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며, 한국인이라면 자신이 가진 정치이념을 떠나 ‘한국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트럼프가 아니라 해리스의 당선을 응원해야 한다고 믿는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감축 또는 철수시킬 것
국내 언론에서 비교적 적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한미군에 대한 트럼프의 시각이다.
트럼프는 벌써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전가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를 넘어서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까지 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각) 트럼프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 칭하며,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 한국에 연간 100억 달러의 방위비 분담금을 지출시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10월 초에 2026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1조5192억원으로 정하고,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반영하는 내용의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되돌리고 재협상을 통해 한국에 기존 안보다 10배 가까운 분담금을 내게 만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많은 이들은 트럼프의 이런 발언을 ‘협상용 협박’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애써 무시하는 회피성 낙관주의다.
트럼프는 기존의 미국 지도자들과 다르다. 소속 정당을 떠나 역대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세계전략’이라는 큰 틀 안에서 주한미군을 사고해 왔다.
2000년 초, 주한미군의 범죄 행위와 이라크 전쟁 등의 여파로 한국 내에서 ‘주한미군 철수’ 여론이 비등했을 때도 미국 백악관 차원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진지하게 고려된 바는 없다.
미국의 지도적 인사들은 정당을 초월하여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을 중시해 왔다.
‘세계 경찰’ 포기하자는 트럼프
이에 반해 트럼프는 이미 공개적으로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 역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이던 2018년 12월 26일,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에 있는 미군 공군기지를 방문해 “미국은 계속해서 세계의 경찰일 수는 없다. 우리는 세계의 호구(suckers)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2020년 6월 13일 트럼프는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 참석해 “많은 사람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머나먼 땅에서 벌어지는 오래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미국 병력의 의무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도 발언했다. 트럼프는 말로만 ‘세계 경찰’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세계 각국에 있는 미군을 자국으로 귀환시키려 노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의 시리아 미군 철수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4년 9월부터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의 확장을 막기 위해 IS의 점령지를 공습하기 시작했고, 동년 10월부터 여러 동맹국과 함께 ‘내재된 자유 작전’(Operation Inherent Resolve)’을 가동했다.
미군은 시리아 북부 쿠르드인 민병대인 시리아민주군(SDF)과의 연합 작전을 통해 2018년 말까지 이슬람국가의 점령지를 상당수 해방시켰다.
시리아의 내부 정세는 매우 복잡해, 이슬람국가뿐만 아니라 정부군과 반군도 오랫동안 내전을 펼치고 있었다.
비록 미군의 개입으로 이슬람국가는 영향력을 잃었지만, 내전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군의 존재로 내전이 균형 상태를 맞았을 뿐이다.
그런데 2018년 12월 19일,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IS의 패배’를 확인했다며 주(駐) 시리아 미군을 철군할 의견을 피력했다.
바로 이튿날 제임스 매티스(James Mattis)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이러한 결정에 항의해 전격 사임했고, 이 때문인지 한동안 트럼프도 미군철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당시 매티스 장관의 퇴임의 변)
하지만 10개월여가 지난 2019년 10월 6일, 트럼프는 평소 친분을 과시해 온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통화를 나눈 후 갑자기 주 시리아 미군의 철수를 명했다.
미군이 철수하자 쿠르드인의 독립 움직임을 못마땅하게 여겨온 에르도안은 바로 쿠르드인 영토에 공격을 가했다.
철수하는 미군의 ‘배신’에 성난 쿠르드인들이 미군 행렬에 돌과 감자 등을 던지며 항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과연 ‘주한미군’은 예외일까
하지만 주한미군은 다른 곳의 미군과는 다르다고 애써 믿고 싶을 것이다.
중국, 북한과 대치하는 주한미군이 시리아의 미군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아무리 트럼프라 할지라도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생각은 못 할 것이라 믿고 싶을 것이다.
이 또한 냉정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회피성 낙관주의에 따른 전망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킨 전례가 있는 트럼프 입장에서 주한미군만 예외일 이유가 없다.
매티스 국방장관의 후임인 마크 에스퍼(Mark Esper)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9년 7월부터 1년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 활동했다.
주 시리아 미군이 철수할 당시 국방장관이기도 하다.
그는 2020년 11월 9일 전격 경질됐는데, 이후에는 반(反) 트럼프 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22년 5월 10일 펴낸 《성스러운 맹세》(The Sacred Oath)에서 트럼프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주둔해 있는 해외파병 미군을 철수시킬 생각이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선을 앞둔 2020년 7월,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의 상당수를 철군시킨 바 있다.
과연 독일이 한국에 비해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질까? 독일은 유럽 대륙의 한복판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다.
당시 트럼프는 주독미군의 1/3에 달하는 1만2000명을 철수시켰는데, 그 때도 방위비 협상이 문제가 됐다.
트럼프가 독일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에게 2024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중 2%를 방위비로 쓰라고 요구했지만, 독일의 방위비가 GDP의 1.4%만을 방위비로 쓰고 있다는 것이 철군의 이유였다.
위 에스퍼 전 장관의 책을 보면, 트럼프는 한국과의 방위비 협상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었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내비친 바 있다.
2020년 3월 한미 양국 방위비 분담 협상의 결과, 한국은 기존보다 13% 증액된 방위비를 내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 안을 거부하고 한국의 방위비를 400%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에스퍼 전 장관에 따르면,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이었던 2018년 1월, 트럼프는 트위터(현 X)에 주한미군 가족들에게 한국을 즉시 떠나라는 글을 올리려 했다.
하지만 에스퍼 전 장관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트럼프를 설득했는지, 트럼프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18년 1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 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의 설득으로 트럼프가 트위터에 ‘주한미군 가족 대피령’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에스퍼 전 장관은 15개월에 걸친 자신의 재직기간 동안 트럼프는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다고 폭로했다.
한번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전 국무장관이 트럼프에게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시죠”라고 말해 위기를 넘어간 적도 있다고 밝혔다.
에스퍼 전 장관은 자신이 퇴임할 경우 후임 국방장관이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명령을 따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장관직을 지켰다고 밝혔다.
(전직 트럼프 정부 관료들이 트럼프를 비판하는 발언을 모은 영상 / 카멀라 해리스 유튜브)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증언하는 트럼프의 전 측근들
혹시 마크 에스퍼가 트럼프를 공격하기 위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라는 희망회로를 돌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고위직 중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증언하는 이는 에스퍼 전 장관이 유일하지 않다.
2017년 2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허버트 맥매스터(Herbert McMaster)는 올해 8월 27일(현지시각)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 : 트럼프 백악관에서 나의 임무 수행》을 펴냈다.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2017년 11월 트럼프의 첫 방한 당시 동행했는데, 이때 트럼프는 맥매스터에게 한국이 주한미군 기지 건설 비용을 100% 내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렸으며, “우리가 한국에서 나오고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다루도록 놔두는 게 어떻겠냐”라고 묻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도발적인 돈 낭비”라고 폄훼하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최악의 무역 협의”라 비난한 바도 있다.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트럼프의 충동적인 정책 결정을 제어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트럼프는 그의 역할에 불만이 많았는지, ‘트위터’를 통해 맥매스터 해임 사실을 알렸다.
북한 김정은이 원하는 트럼프 재집권
극소수 종북주의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국경제가 폭망할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떠나면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중국의 패권을 인정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또한 일본, 대만 등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이런 불안감으로 인해 한국에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그들의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해외로 이민을 떠날 수 있는 부자들의 한국 탈출 러쉬가 이어질 것이다. 굳이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이밀 필요조차 없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중국과 북한이 두 손 들고 환영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 김정은 정권이 트럼프의 당선을 원하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는 올해 8월 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천재일우와 같은 기회”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재임 동안 세 번이나 김정은을 만났다. 세 번 모두 김정은이 트럼프 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리일규에 따르면, 김정은은 트럼프야말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동결하는 대신 미국의 제재 해제를 끌어내려고 하는데 트럼프와는 이런 내용의 협상이 가능하다는 게 김정은 정권의 속내다.
리일규는 7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미국과의 수교, 경제 지원 세 가지를 원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 재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진지하게 고려해야
트럼프는 재임 기간 내내 자신이야말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인물이라고 강조해 왔다.
70년째 정전 상태인 한반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역사적인 사업을 성공시킨다면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여전히 충동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노리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실행할 가능성, 정말 없다고 믿어도 될까?
오히려 나는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한 다음 전문가들의 의견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한미군 주둔 목적 중 가장 큰 부분은 북한의 위협인데, 만약 3차 북미회담이 이뤄지고 북한의 위협이 제거됐다고 판단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엄청난 비용을 써가며 굳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저자 : 맥스 부트(Max Boot) 국가안보전문가, 수미 테리(Suemi Terry) 한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트럼프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집착하고 있으며, 한국이 나토보다 더 많은 국내총생산(GDP)의 2.7%를 방위비로 분담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하다. 그는 과거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 바 있고, 한미일 연합 훈련 비용을 댈 것 같지도 않다.”
“김정은이 기민하다면 그는 하노이 회담 당시 제안을 약간 더 달콤하게 해서 트럼프 재집권에서 이익을 노릴 수 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결단을 하면서까지 김정은과 협상을 할 수도 있고, 김정은이 또 다른 도발에 나설 경우 또다시 ‘화염과 분노’의 표현을 쓰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는 예측불가능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