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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과 민주노동당

2025년 2월 2일, 이준석이 홍대거리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개혁신당
2025년 2월 2일, 이준석이 홍대거리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개혁신당

갑자기 ‘민주노동당’이 부활했다. 지난 어버이날,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던 중, 동생이 불쑥 내게 “민주노동당 다시 생긴 거 알아?”라고 물었다.

나는 정의당이 선거를 앞두고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꾼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때는 구 민주노동당 시절일 것이다.

2004년 총선 직전, 당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였던 고 노회찬 의원은 TV 토론회에서 “50년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라며 거대 양당 체제를 비판했고, 노회찬의 이 발언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꽤나 파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노회찬의 발언에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얻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강고한 양당 구도의 틈새 속에서도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노회찬은 구시대 정치의 상징적 인물인 김종필의 10선을 저지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의당은 이번 대선을 계기로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다시 꿈꾸고자 당명을 변경한 것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이 전한 ‘민주노동당’ 부활의 내막은 조금 이상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을 중심으로 진보 및 노동운동 각 세력은 단일한 전선을 형성하기로 결정하고, 형식적으로 정의당이라는 울타리 안에 노동당 등 각 세력의 인사들이 개별 입당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렇게 탄생한 ‘새 진보정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정의당이 잠시 ‘녹색정의당’이라는 당명을 내세웠던 것처럼 대선용 새 정당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2025년 2월 2일, 이준석이 홍대거리에서 대통령 선거 출보5월 6일,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권영국 후보(가운데 안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민주노동당마선언을 하고 있다. / 개혁신당
보5월 6일,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과 권영국 후보(가운데 안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민주노동당

‘대선용 진보정당’의 정당명 후보로는 민주노동당, 평등사회당, 사회연대당 3개가 올라왔다. 4월 27일 정의당은 대의원 투표를 통해 이 중 ‘민주노동당’을 새 진보정당의 당명으로 결정한 것이다.

권영국 당대표 및 대통령 후보의 행보가 흥미롭다. 그는 1차 투표에서는 민주노동당, 2, 3차 투표에서는 평등사회당을 지지했다가, 4차 투표에서는 기권을 했다.

그런데 이 4차 대의원 투표에서 민주노동당 지지 대의원은 72명, 평등사회당 지지 대의원은 71명, 불과 1명 차이로 민주노동당으로 당명 교체가 결정된 것이다.

즉, 정의당이 진보정당의 초심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것이 아닌 것이다.

정확한 내부 사정은 모르겠으나 정의당 내에 ‘민주노동당’과 ‘평등사회당’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세력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간발의 차이로 민주노동당으로 당명 변경이 결정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평등사회당보다는 낫다고 본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내 머릿 속에 기묘한 의식의 흐름이 진행됐고, 그 결론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까지 다다랐다.

문득,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의외로 여러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석 후보는 올해 2월 홍대거리에서 대통령 출마선언을 했다.

그는 21년 전 노회찬이 그랬던 것처럼 거대 양당 질서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윤석열도 이재명도 모두 거부하는 이들의 대안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보니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는 꽤나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두 정당 모두 ‘주황색’을 당의 상징색으로 내세웠고, 젊은 남성, 소위 말하는 ‘이대남’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으나, 20여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주요 대학교 중 ‘민주노동당 대학생위원회’가 없는 곳이 없었다.

‘민주노동당 대학생위원회’가 배출한 대학교 총학생회장, 단과대 학생회장도 수없이 많았다.

이준석과 비슷한 연배인 나 역시 민주노동당 대학생위원회에 소속되어 적극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총학생회장 선거운동을 함께 했던 기억이 있다.

민주노동당과 개혁신당 모두 ‘인터넷 열풍’의 덕을 본 정당이다.

오늘날 에펨코리아 등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개혁신당의 지지 열기가 마치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앞서고 있는 착시가 들 정도로 개혁신당 지지층의 활동이 활발하다.

20년 전 민주노동당이 딱 그랬다. 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노사모 등 열린우리당 지지자들과 치열히 싸웠고, 이들은 진중권, 박노자 등 진보 지식인들의 글을 읽고 사회 곳곳에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2024년 총선 KBS 출구조사 결과
2024년 총선 KBS 출구조사 결과

그러나 인터넷 세상과 달리 현실 공간에서 주황색 제3정당은 그다지 인기가 없다.

윤석열의 계엄내란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지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개혁신당은 정당투표에서 3.61%를 득표하여 3석을 얻는 데에 그쳤는데, 2008년 총선에서 이미 전성기가 지난 민주노동당이 얻은 5.68%의 득표율만도 못한 성과다.

다만 개혁신당이 이대남 계층에서 많은 지지를 얻는다는 점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지난해 총선 출구조사를 보면 개혁신당은 이대남 계층에서 16.7%를 득표해 같은 계층에서 26.6%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과 채 10%포인트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전성기 시절 민주노동당도 당시 이대남 계층에서는 15% 이상은 득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개혁신당의 ‘이대남 지지세’를 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은 이대남 계층에서 17.9%를 득표해 개혁신당을 앞질렀다. 다른 성별 및 연령층에서도 조국혁신당은 개혁신당보다 높은 득표를 했다.

20년 전 민주노동당도 인터넷 열풍에 비해 현실 선거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게 개혁신당 역시 현실에서는 미풍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이 10%를 넘는 득표를 할 수 있을까?

그가 이대남 지향적인 행보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얻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 생각한다.

또한, 그가 보수 빅텐트나 보수후보 단일화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기존 양당 구조를 혁신할 제3의 길을 꾸준히 걷는다면, 언젠가 시대는 그에게 더 큰 무대를 열어줄 수도 있다.

2월 2일 홍대거리 출마연설에서 이준석은 노회찬 전 의원의 발언을 의식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이상 새로운 고기를 얹을 수 없을 정도로 다 타버린 고기 불판을 새로운 불판으로 바꿔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무겁게 느껴진다”

개인적인 지향을 말하자면 개혁신당보다는 민주노동당 쪽이 더 가깝다. 하지만 2025년 대선에서 ‘불판을 바꾸는’ 역할로 더 적합한 사람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보다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로 보인다.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이준석 후보가 대선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으면 좋겠고, 10여 년 만에 부활한 민주노동당도 너무 실망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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