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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한국의 시인들

내가 생각했던 노벨문학상 후보군 - 서정주, 신경림, 김지하
왼쪽부터 한강, 서정주, 신경림, 김지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한국의 시인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소설가 한강 작가로 결정됐다. 모두 그랬듯이 나 역시도 한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약간 뿌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노벨문학상 소식을 접하며, 전부터 생각하던 나만의 ‘노벨문학상 후보’에 대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출신 노벨문학상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된 사람은 고은 시인이었다.

2018년 최영미 시인의 성추행 폭로 이후엔 더 이상 고은과 노벨문학상을 연관 짓는 사람은 없어졌다.

하지만 내가 학생이던 2000년대 초부터 고은은 줄기차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다.

어린 시절부터 이 점에 큰 의문이 있었다.

노벨문학상의 정확한 심사 기준은 모른다. 하지만 모름지기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려면 누구나 알 법한 작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의 문단에는 고은보다 훨씬 위대한 작가도 많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유명 작가의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부모님의 서가에는 이상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 위에 거론한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 꽂혀 있었고, 나의 입시를 위해 구입하셨을 문학 전집도 있었다.

김춘수, 김지하, 황석영, 이문열, 기형도, 공지영 등 당대 유명한 작가들의 책도 한두 권씩은 있었다.

부모님 서가의 영향인지 고등학생 때는 문예 창작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솔직히 동아리에서 열성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선후배로부터 이런저런 문학 작품을 추천받은 기억은 난다.

훗날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교과서에 실린 작가들의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을 소개해 주었다.

문학에 관심이 많던 여학생들은 안도현, 도종환, 류시화의 책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내가 읽은 문학 작품 중에는 분명 고은 시인의 작품도 있었을 게다.

그런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은의 작품 중 단 한 구절이라도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은 없다.

반면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절대 잊히지 않는 구절을 써낸 시인 몇 명이 생각난다. 나는 고은이 한창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될 때부터 이들의 작품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왔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첫 연이다. 서정주는 친일과 전두환 찬양 행적 때문인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시는 오랫동안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다.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서 서정주의 작품을 가르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구글링을 해보니 2016년까지는 수능 모의고사에도 서정주의 작품이 출제됐다는데 교과서에서는 다 내린 걸까?

나는 후대 세대에게도 서정주의 작품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정주의 어두운 행적에 대해서도 학생들에게 그대로 교육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비록 서정주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한 정권을 찬양한 전력이 있다고 해도, 그가 ‘악마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은 틀림없다.

그의 시에는 사람의 뇌를 깨우는 강력한 힘이 있다. 단 한 문장만 읽어도 그 문장은 독자의 머릿속에 모종의 작용을 일으킨다.

그게 무슨 작용인지 알아챌 틈도 없이 한 마리 소쩍새가 밤하늘에, 나뭇가지에 앉아 빨간 눈을 부릅뜬 채 시끄럽게 울어대는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게다가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인데,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댔으니, 소쩍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도 서정주의 시를 고등학생 때 처음 읽었다. 교과서인지 문제집인지 수능 모의고사 문제지인지 까지는 모르겠다.

당시 나는 2024년에 비해 수능의 중요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기를 살았다. 내신 성적이 반에서 중간을 가지 못하더라도 수능 성적 한방으로 입시에서 역전홈런을 날릴 수 있는 때였다.

11월 수능 때 “노오란 네 꽃잎”이 피는 모습을 기어코 보기 위해 정신적으로 끙끙 앓았던 입장에서 ‘국화 옆에서’는 마치 내 처지를 그린 듯한 시였다고 기억한다.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은 쏟아지는데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 노래’의 첫 세 줄이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시는 당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사 온 젊은이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나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20세를 전후로 상경하여 수도권에 정착하셨다.

명절 때면 이따금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곤 한다. 부모님은 20대 때 서울의 친척집이나 하숙집을 전전하며 사셨다. 아버지는 서울역 근처 성당이 있는 언덕배기 마을에 잠시 거주하셨고, 어머니는 지금은 돈의문 박물관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회색 돌담이 있는 작은 집에서 할머니, 언니, 동생들과 함께 사셨다.

아파트촌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은 쏟아지는데”라는 구절부터 낯설다. 그 뒤에 나오는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도 마찬가지다. 다들 잠자는 밤에 왜 호각을 분단 말인가? “메밀묵 사려” 소리는 어린이 때 들어본 기억은 있으나, 그것도 20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 소리마저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다.

부모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신경림의 시를 떠올린다.

아무리 친척집이라고 해도 겨우 20살의 나이에 남의 집에 얹혀살게 될 때의 두려운 마음이 없진 않았을 거다. 타지에서 고생하며 고향집을 그리며 한탄을 내뱉은 적도 있었을 거다. 이 시를 다시 읽으며 이 시의 화자처럼 쓸쓸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을 품었을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봤다.

홍승희 평론가의 ‘김지하 마지막 대담’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이번엔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의 일부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 같은 사람들은 군사독재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한된 삶을 겪은 적도 없다.

중학생 시절만 해도 체벌하는 교사가 여럿 있었지만, 고등학생 때는 운 좋게 담임 교사들이 전교조 소속이었던 덕분인지 교사의 체벌도 피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한 친구에게 ‘김광석’을 소개받았다. CD 플레이어에 김광석의 CD를 넣고 ‘타는 목마름으로’을 처음으로 들었다.

호소력 짙은 김광석의 목소리에 반했는지 나는 바로 그 원작을 찾아 봤다. 마침 학교 도서관 서고 한쪽에 김지하 시집이 있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全文)을 처음 읽은 나는 온몸에 오싹한 감정을 느꼈다.

당시 나는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 등 교과서 범위 밖의 책을 좀 읽었다는 이유로 나름 독재정권 시절에 대해 다른 친구들보다 잘 아는 체를 하던 애송이였다.

그런데 진짜로 뒷골목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 “비명 소리”가 들리고 민주주의 네 글자를 흐느끼면서 남 몰래 쓸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던 이의 생생한 기록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쯤부터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제한된 나라였다”라는 취지의 말을 해 왔다.

지금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본능에서부터 거부감이 올라온다. 선거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찢긴 시대를 옹호하는 정당과 후보에는 평생 투표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할 것이라 여러 차례 다짐을 반복해 왔다.

이런 인생의 결정을 내리는 데 여러 요소가 영향을 줬지만, 문학작품 중에서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가장 큰 영향을 줬다.

지금은 김지하가 보수 세력에 가깝다는 이유로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의 사상적 지향점이 뭣이 중요한가. 그의 작품이 독자의 마음을 울렸는지, 특히 독자가 살아보지도 않은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 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만약 한국의 시인 중 단 한 명만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해야만 한다면 나는 김지하를 추천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우연인지 한강 작가의 남편인 홍용희 문학평론가는 김지하 연구자라고 한다. 그는 작년에 《김지하 마지막 대담》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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