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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 오랜만에 부활한 한국형 걸밴드 아이돌

QWER, 오랜만에 부활한 한국형 걸밴드 아이돌

QWER 이시연 마젠타 시요밍
QWER의 멤버 시연, 마젠타 / 필자 촬영

최근 친구의 소개로 QWER이란 4인조 걸그룹을 알게 됐다. 정확히는 일반적인 걸그룹이 아니라 ‘걸 밴드’다. 멤버 4명이 각자 드럼, 베이스, 기타, 보컬을 맡아서 직접 연주한다는 점이 기존 아이돌 그룹과 차이점이다.

‘QWER’ 이름의 유래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QWER란 이름은 스타크래프트 이후 e스포츠의 주류로 자리 잡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란 게임에서 따온 것이다. 표준 키보드 배열인 쿼티(qwerty) 배열의 좌상단에 있는 4개 키가 각각 q, w, e, r이다. 롤은 마치 대전격투게임처럼 캐릭터를 골라서 플레이하는데, 캐릭터마다 4개의 스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각 스킬의 단축키가 q, w, e, r이다.

걸 밴드 QWER은 멤버가 각각 Q, W, E, R을 맡고 있다. 특히 보컬인 시연은 R을 담당하는데, 롤에서 R스킬은 궁극기다. 일반적으로 밴드에서 보컬 멤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반영한 걸로 해석한다.

QWER에 ‘입덕’하고 나서 여러 영상을 챙겨 봤다. 필자가 졸업한 모 대학교 축제 공연 영상도 봤고, 멤버들이 출연한 여러 예능 영상도 찾아 봤다. 내 느낌일 뿐이지만, QWER의 무대에서는 다른 걸그룹 무대와 다른 열기를 느꼈다. 현존하는 그 어떤 걸그룹보다도 남성팬의 함성이 큰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걸 밴드’라는 점도 한몫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대중음악을 많이 듣는 편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살면서 ‘걸 밴드’ 노래를 들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자우림 등 여성 보컬 밴드 노래는 들은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대거나 더 어린 나이대 남성의 관점에서 ‘걸 밴드’라는 존재 자체가 매우 신선한 요소다.

QWER 쵸단 히나 냥뇽녕냥
QWER의 멤버 쵸단, 히나 / 필자 촬영

국내 대중음악계의 걸 밴드

생각난 김에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걸 밴드’의 존재감이 어떤지 궁금해졌다. 구글링을 통해 자료 검색을 해보니 ‘걸 밴드’ 컨셉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무려 박정희 시대부터 미약하게나마 ‘걸 밴드’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최초의 ‘걸 밴드’는 1960년대 초에 결성된 9인조 블루리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들은 앨범을 남기지 못한 채 공연 활동만 한 터라, 지금은 사진 외에는 관련 자료가 남아 있는 게 없다.

그 외에도 1960~70년대에 6인조 서울패밀리, 5인조 레이디 버드, 5인조 해피돌즈, 4인조 힛걸스 등 여러 걸 밴드가 활동했다.

한스밴드와 자우림

QWER처럼 아이돌 형태의 걸 밴드는 없었을까. ‘아이돌 밴드’의 느낌과 가장 유사한 최초의 사례는 아마도 1998년 데뷔한 3인조 자매 걸밴드 ‘한스밴드’일 게다.

이들은 포스트 IMF 시대를 노래하며 여러 음악방송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리더였던 큰언니 한나는 데뷔 당시 16세였다. 지금도 큰언니가 16세인 걸그룹이 흔하지 않은데, 26년 전에는 더욱더 신기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들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인기에 비해 멤버들이 가져간 수익이 거의 없었고, 미성년자 멤버들의 진학 문제 등으로, 용두사미로 마무리한 그룹으로 기억한다.

한스밴드가 활동한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는 ‘걸 밴드’보다는 ‘여성 보컬 밴드’가 번성했던 시기다. 비슷한 시기 지젤, 버튼, 일렉쿠키 등의 걸 밴드가 있었다고는 하나, 솔직히 대중적인 인기도는 낮았다.

대신 자우림, 러브홀릭, 롤러코스터, 체리필터, 럼블피쉬 등 보컬만 여성인 밴드들이 큰 인기를 누렸다. 당시 필자는 학생이었는데, 등하굣길에 늘 갖고 다니던 MP3 기계 속에 여성 보컬 밴드 노래가 못해도 1/4 이상은 포함돼 있었다. 노래방에서 여성 보컬 밴드의 노래를 남자 음정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다.

 

AOA와 원더걸스

한편, 아이돌 업계에서도 걸 밴드 시도는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심쿵해’와 ‘단발머리’로 유명한 AOA가 데뷔 초인 2012년부터 약 1년간 걸 밴드 컨셉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사실 AOA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그룹은 아니었고, 메인보컬 초아, 래퍼 지민, 훗날 지민으로부터 괴롭힘 피해를 보았다고 폭로한 민아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걸밴드 컨셉에서 초아와 지민은 기타, 민아는 베이스기타 포지션이었다고 한다. 데뷔 전부터 밴드 활동을 염두에 두고 악기 연습도 열심히 했다고는 하는데, 생각보다 밴드 컨셉으로는 큰 재미를 못 본듯 하다.

한때 국내 아이돌 원탑이었던 원더걸스도 활동 말기에 걸 밴드 컨셉을 시도했다. 이들은 2012년 이후 3년 가까이 공백기를 가진 뒤 2015년에 컴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걸 밴드 컨셉으로 새 앨범을 만든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당시 원더걸스는 각 멤버의 연주 영상을 공개했는데, 특히 선미가 1분가량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던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꽤 화제가 됐다. 필자도 그 영상을 보며 ‘얘네가 제대로 연습하긴 했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이듬해 원더걸스는 ‘Why So Lonely’로 각종 음원차트 1위를 기록한 뒤 10년의 활동을 뒤로 하고 해체한다. 물론 원더걸스가 QWER처럼 100% 걸밴드로만 활동한 건 아니다. 새 앨범 프로모션 활동을 할 때 초반 1~2주만 걸밴드로 하고, 그 이후에는 일반적인 걸그룹과 마찬가지로 댄스그룹으로 활동했다. 그래도 걸밴드 컨셉이 먹혔는지, 장수 걸그룹 중에는 드물게 그 마무리도 화려하게 매듭지었던 그룹으로 기억한다.

 

7년 만에 나타난 걸 밴드 아이돌

그리고 약 7년이 지나 QWER이라는 걸 밴드 아이돌그룹이 탄생했다. 그 사이에 걸밴드 컨셉을 시도한 걸그룹이 존재했는지 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2016~2023년 사이에 QWER만큼 대중적 성공을 거둔 걸 밴드 아이돌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 남자의 로망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밴드활동’의 로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필자도 평생 밴드활동을 해본 적은 없지만, 가끔 동전노래방에서 락 음악을 부르며 아쉽게나마 그 아쉬움을 채우기도 한다.

QWER은 데뷔 준비 과정을 ‘최애의 아이들’이란 유튜브 컨텐츠를 통해 공개했다. 마지막편까지 보며 필자도 이런 멋진 동료들과 함께 악기를 배우고 밴드 음악을 합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QWER가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멤버 한명 한명이 이쁘고 끼가 넘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걸 밴드’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 역시 인기 비결 중 하나다. 그 스토리를 따라가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 속으로만 잠깐 생각하고 말았던 밴드 활동의 로망을 QWER이 대신 채워주고 있어 기쁘다.

다음에는 QWER이 현존하는 걸그룹과는 어떤 차별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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