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도 쉽게 읽는 애널리스트 보고서
양승윤,「로보틱스: 시작된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 2026년 7월 22일
7월 21일, 삼성전자에 새 조직 하나가 생겼다

2026년 7월 21일, 삼성전자가 노태문 대표이사 직속으로 ‘RX(Robotics eXperience) 사업추진실’을 신설했다.
이름이 낯설겠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그동안 삼성전자·삼성리서치·미래로봇추진단 등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로봇 인력과 기술을 한 조직으로 모았다는 뜻이다.
나는 이 조직 개편을 단순한 자리 이동으로 보지 않는다.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일부터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제품으로 파는 단계까지, 지금까지 부서별로 쪼개져 있던 로봇 업무가 이제 하나의 지휘 라인 아래에서 굴러가게 됐다. 서울 R&D 캠퍼스를 본진으로 삼고, 경북 구미에는 로봇 데이터 팩토리, 미국·중국·일본에는 해외 연구 거점을 두어 국내외를 잇는 그림이다.
사람도 함께 데려왔다. 현대차그룹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전략을 맡았던 이동건 부사장이 로보틱스 전략팀장으로 합류했고, 서울대 김현진 교수와 아주대 김의겸 교수를 영입해 로봇 제어와 손(핸드) 기술을 보강한다. 전략·제어·하드웨어의 핵심 인재를 한꺼번에 채운 셈이다.
타임라인: 여기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삼성의 로봇 사업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오랜 기술 축적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흐름을 6단계로 정리하면 이렇다.

기술: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직접 만든다

로봇 회사의 실력은 결국 “몸을 얼마나 직접 만들 수 있느냐”와 “그 몸을 얼마나 똑똑하게 움직이느냐”에서 갈린다.
삼성전자는 양쪽 모두를 스스로 확보하려 하고 있다.
① 몸을 만드는 힘 — 하드웨어
삼성전자는 모터와 드라이브를 자체 설계하고, 약 80종에 이르는 액추에이터를 연구하고 있다.
아직 시장에서 통할 로봇의 크기와 형태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형·대형·고출력·인간 친화형 등 여러 폼팩터를 한꺼번에 시험하는 중이다.
로봇 손 역시 링크식·케이블식 등 서로 다른 구동 구조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 액추에이터는 로봇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근육 같은 부품이다. 보통 모터·감속기·드라이브가 한 덩어리로 묶여 관절 하나를 돌린다.
- 폼팩터는 제품의 크기·형태·구조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② 똑똑하게 움직이는 힘 —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에서는 자체 미들웨어와 강화학습 기반 제어 기술을 개발하고, 제조 현장의 다양한 작업을 로봇이 스스로 해내도록 VLA 모델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AI를 학습시키려면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삼성은 ‘로봇 데이터 팩토리’를 통해 그 데이터를 계속 쌓아간다.
VLA 모델(Vision-Language-Action)은 눈으로 본 장면(Vision)과 언어 명령(Language)을 실제 동작(Action)으로 이어 주는 AI다.
쉽게 말해 “저기 있는 부품을 집어 조립대에 올려”라는 말을 로봇의 팔 움직임으로 번역해 주는 두뇌다.
미들웨어는 로봇의 하드웨어와 응용 프로그램 사이를 이어 주는 중간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삼성은 직접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투자도 활발히 병행한다.
C-Lab, 삼성벤처투자, 삼성넥스트 같은 통로로 초기 기술 기업을 발굴하고, AI·센서처럼 빠르게 변하는 분야는 지분 투자와 공동 개발로 보완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중심축에 두되, 부족한 조각은 밖에서 채우는 전략이다.
이미 한 번 실패해 봤다는 것, 그게 오히려 자산이다
삼성전자는 로봇을 처음 파는 회사가 아니다.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 ‘봇핏’과 AI 홈로봇 ‘볼리’를 상용화하려 했으나, 출시 일정이 거듭 미뤄지며 대중 판매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봇핏의 B2C 출시는 2023년, 2024년으로 계속 밀렸고, 2020년 처음 공개된 볼리도 지난해 판매 예고에 그쳤다.
이 경험을 실패로만 읽으면 안된다.
로봇은 기술 시연과 실제 판매 사이의 간극이 유난히 크다.
소비자 시장에서는 가격·안전·사용성·서비스 생태계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데, 삼성은 이 벽을 몸으로 부딪쳐 배웠다. 그래서 다음 순서를 바꿨다.
사업화 순서를 제조 현장용 로봇 → 홈·리테일 확장으로 재정립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공장은 집보다 로봇이 할 일이 또렷하고, 돈이 얼마나 절약되는지 숫자로 확인하기 쉽다.
반복 작업 대체, 생산성 개선, 안전사고 감소 같은 효과를 계산할 수 있고, 통제된 환경이라 로봇의 성공률도 끌어올리기 좋다.
무엇보다 삼성 그룹은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배터리·조선·건설·바이오까지 실제 공장을 잔뜩 가지고 있다.
삼성만의 무기 — 쓰는 사람이자 만드는 사람
여기서 삼성의 진짜 강점이 나온다.
삼성은 로봇을 직접 쓰는 수요자인 동시에, 반도체·부품·완제품·생산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 공급자다.
대부분의 로봇 회사는 둘 중 하나다. 삼성은 둘 다다.
그림을 그려 보면 이렇다.
자체 공장이 새 로봇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이자 첫 고객이 된다.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AI와 하드웨어 개발에 쏟아붓고, 개선된 로봇을 또 공장에 넣는다.
이 과정이 돌수록 제조 레퍼런스와 데이터가 눈덩이처럼 쌓인다.
나는 이런 수직 통합형 생태계야말로 삼성이 후발 주자임에도 승부를 걸 수 있는 근거라고 본다.
수직 통합은 부품 → 완제품 → 실제 사용까지 여러 단계를 한 회사(그룹)가 직접 아우르는 구조를 말한다.
남의 손을 거치지 않으니 데이터와 노하우가 밖으로 새지 않고 안에서 계속 순환한다.
이제부터 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RX 사업추진실 출범과 함께 삼성의 로봇 사업은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삼성은 정부 주도 메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남권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며, 기존 제조업에 AX와 RX를 접목하고 구미에 휴머노이드 양산 체계와 데이터 팩토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다섯 가지를 짚어 두자.
- 삼성·레인보우로보틱스가 함께 개발하는 신형 휴머노이드의 공개 시점
- 구미를 중심으로 한 양산 라인과 데이터 팩토리의 실제 구축 진척
- 액추에이터·핸드·센서 등 핵심 부품 공급망의 확정 여부
- 삼성 그룹 제조 현장에 오퍼레이팅봇·물류봇·조립봇이 실제로 투입되는지
- 추가 투자와 M&A가 얼마나 확대되는지
AX와 RX? AX(AI Transformation)는 기존 업무·공정에 AI를 접목해 바꾸는 것, RX(Robot Transformation)는 제조 현장에 로봇을 접목해 바꾸는 것이다.
삼성은 생산 라인을 관리하는 오퍼레이팅봇, 자재를 옮기는 물류봇, 조립을 맡는 조립봇을 AI와 묶어 ‘AI 자율공장’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오래전부터 반복해 왔다.
로봇 섹터 전체는 지금 어떤 국면인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로 눈을 넓혀 보자.
국내 로봇 섹터는 6월 이후 고점 대비 약 50% 조정을 받았다.
단기 모멘텀이 사라진 데다, 기대감을 넘어 실제 상용화와 수익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영향으로 나는 해석한다.
밸류에이션 부담과 피지컬 AI의 기술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하반기에는 산업 기대감을 다시 키울 수 있는 이벤트가 촘촘히 몰려 있다.
테슬라 실적 발표(7월 23일)를 시작으로 현대차 CID(8월 26일), 9월 말 코스닥 승강제 구체화 같은 정책 이벤트가 이어진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로봇 사업 본격화가 겹치면, 그동안 부진했던 섹터의 분위기가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피지컬 AI란? 화면 속에서만 답을 내놓는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움직이며 일하는 AI를 말한다.
로봇은 피지컬 AI가 실제로 구현되는 대표적인 무대다.
용어 정리
- 휴머노이드
사람의 형태를 본떠 두 팔·두 다리를 갖춘 로봇. - 액추에이터
로봇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근육 역할의 부품. 보통 모터·감속기·드라이브가 한 덩어리다. - 폼팩터
제품의 크기·형태·구조를 통틀어 이르는 말. - 미들웨어
로봇의 하드웨어와 응용 소프트웨어 사이를 이어 주는 중간 소프트웨어. - 강화학습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보상을 받으며 스스로 최적의 행동을 익히는 AI 학습 방식. - VLA 모델
본 것(Vision)과 명령(Language)을 실제 동작(Action)으로 연결하는 AI 모델. - 피지컬 AI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으로 움직이며 작동하는 AI. - 콜옵션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 연결 자회사
모회사가 경영을 지배해 실적을 하나로 묶어 보는 자회사. - 수직 통합
부품부터 완제품, 사용까지 여러 단계를 한 회사가 직접 아우르는 구조. - 테스트베드
새 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해 보는 무대.
